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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와 인간이라는 느낌으로 유키죠지유키

dpfm 2018. 6. 9. 00:02

어릴 적 시골 할머니 댁에 갔을 때 일이었다. 부적을 덕지덕지 붙여놓은 다락을 발견하고 호기심을 느끼고 다가가 갔을 때 처음으로 그 소리를 들었다. 다락방 넘어 희미한 흥얼거림. 누군가의 노랫소리. 어린 마음에 다락방에 누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문을 열려고 했지만, 손잡이에 손이 닿지 않아 할머니에게로 달려가 다락방에 누가 있다고 말했다. 그 때 할머니는 세상이 무너질 듯이 놀라 하시며 어린 내 등을 내려쳤다. 이유도 모르고 맞은 뒤 엉엉 울면서 엄마에게로 갔었다. 할머니의 성난 목소리가 뒤를 따라왔다. 긴 아무도 없어! 할머니의 목소리와 왜 때리느냐는 어머니외 목소리가 충돌했다.

그 뒤 할머니 댁에는 가보지 못했다. 그게 아마 유치원 때쯤이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쯤 돼서 그 일이 생각나서 슬쩍 물어보니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집, 그 다락방에 부적이 있는 이유가 다락방에 신을 모셔 두었는데 그걸 자신이 건드렸기 때문에 할머니가 화를 내셨다고 이제 데리고 오지 말라고 엄청나게 난리를 치셨다고 이야기해주셨다.

"나 때문에 싸우고 아직 화해 못한 거네?"
"네 탓이 아니야죠지. 할머니는 옛날부터 그러셨데. 니네 아버지도 할머니의 그런 극단적인 면이 싫다고 하시더라."

​그렇다면 그날 자신이 들은 노랫소리는 착각이었을까. 희미하게 울리는 저음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착각일까. 중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할머니 댁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그 다락방에 아무것도 없는지 다시 확인하고 싶어서 전화했다.

[거긴 살아있는 사람은 없다.]

할머니는 단호하게 그리 말했지만 들렸다. 전화기 넘어 노랫소리가.

-십육야의 밤의 꿈길에서 만나요.
각오를 했다면 지나가세요.
이제 현세로는 돌려보내지 않아요.
찰나의 사랑을 노래한다고 해도...

옆에 누가 있냐고 물을 수도 없었다. 마치 그 노래소리가 자신을 부르는 것만 같아서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하지만 그 노래를 제 꿈 속까지도 찾아왔다.몇 달에 한 번 꼴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부적이 덕지덕지 붙은 다락방과 그 넘어의 노랫소리. 문을 열까, 말까 망설이다가 꿈에서 깨어난다.

하지만 할머니 댁에는 가지 않는다. 사실 가볼까 싶어서 연락하면 할머니께서 올 필요 없다고 소리치시고는 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친구들 핑계를 대며 가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3학년, 할머니가 쓰러졌다는 소식이 전해져왔다. 근처 시내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부모님은 학교에 있는 죠지에게 그렇게 연락을 해왔다. 병원에 갈건데 같이 가겠냐는 질문에 죠지는 비워져 있을 할머니 댁에 가보겠다고 답했다.

확인을 해봐야겠다. 그 집에, 그 다락방에 뭐가 있는지. 아직 그 노래가 이어지고 있는지 궁금해서 도무지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할머니께서 쓰러지셨다고 학교를 나와 짐도 챙길 거 없이 교복차림 그대로 시골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시골집은 죠지의 기억 그대로였다. 어두워져서 캄캄해진 마당을 지나 집으로 들어가 불을 켰다.

-둥실둥실
당신의 곁을 찾아가도록 하지요.
둥실둥실
호랑나비가 춤추며 내려와요.

기다렸다는 듯이 노래가 자신을 반긴다. 안으로 들어가본다. 다락방은 여전히 부적을 덕지덕지 붙은체 그 자리에 있었다. 잠겨 있을까? 망설이며 문앞에 서 있는다. 문, 열면, 노랫말처럼 현실로 자신이 돌아가지 못하는걸까. 이건 제 귀에만 들리는 노래일까. 멍하게 노래를 들으며 얼마나 서 있었을까 인기척에 감각이 현실로 돌아온다.

"히로, 빈집에 무단친입."
"알아, 그정도는. 근데 불이 켜져있네."
"현관에 신발 있던데 누가 온 거 아냐?"
"엇, 그런가?"

대화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다가온다. 목소리는 두 개인데 발소리는 하나뿐이다. 쳐다보고 있으려니 곧 상태가 모습을 드러냈다. 갈색 머리의 소년이다. 그리고 그 소년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다른 소년. 제 또래? 좀 더 나이가 많나? 비현실에 가까운 눈앞의 상황에 할 말을 잃어버리고 갈색머리 소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 저기, 저는 하야미 히로라고 해요. 이 마을 신사에서 수행중인데, 안에 계신지 모르고 왔네요."
"어..."
"이 집 할머님이 쓰러지셨다길래 집은 괜찮나 싶어서 찾아왔는데 벌써 다른 분이 오셨네요! 실례, 했습니다."
"히로, 거짓말이 늘어나는구나."
"사실 할머님이 여기 계실 때도 다락방에 신을 모셔두셔서 저희 신사에서 부적을 써드리고는 했거든요."
"부적을 써준 건 사실이지."

머리 위에 떠 있는 상대가 말을 내뱉는다. 위, 아래 번갈아 보다가 고개만 반사적으로 끄덕인다. 상대는 횡설수설 하지만 말을 늘어놓는다. 부적을 주기적으로 새로 갈아 끼워줘야한다고 그래서 오늘 빈집인 걸 알지만 부적을 가져왔다고 하는데 이 밤에? 라는 의문이 먼저 든다. 그러다가 다시 위를 본다 머리 위에 둥둥 떠 있는 사람. 유령인가? 그럴리가. 지금까지 그런 걸 만나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는데. 히로는 낡은 부적 위에 새로운 부적을 붙이고 있다.

노랫소리가 작아졌다. 뚝 멈춘다. 다락방에 진짜 뭔가 있는건가? 노랫소리 대신 이번에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히로의 어깨가 움찔거린다. 죠지의 어깨도 동시에 움찔거린다.

[신사에서 왔네. 부적은 떼주면 안 될까. 밖에 나가서 나도 그 사람을 찾고 싶거든.]

부적을 하나, 하나 붙인다. 위에 떠 있던 소년이 죠지의 눈앞까지 다가온다. 다락방 앞에서 일어난 히로가 고개를 돌려 그 모습을 보고 기겁하며 손을 휘젓는다.

"으아아, 코우...아니, 그게 벌레가 있어서...!!"
"너 내가 보이지?"

이제 더는 못 버티겠다. 눈앞의 현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죠지는 그대로 정신을 놔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