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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지가 안 나오는 유키죠지

dpfm 2018. 5. 31. 22:23
​일요일 오후 3시. 가부키 연습이 끝나고 돌아오니 다들 어디 나간건지 조용한 기숙사의 풍경을 보던 유키노조는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냉장고에 들어 있는 빵과 찬장에서 꺼낸 홍차를 들고 식탁에 앉아 주전자의 물을 끓이려는 순간 카게루가 식당을 들어왔다.

"어라라, 유키짱이네. 아아, 그렇지 잠시 이야기기 좀 해도 괜찮을까?"​

무슨 말? 되물었지만 곤란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꼬리를 흐린다. 뭔가 안 좋은 일이라도 생겼나 싶어서 주전자를 그대로 내려놓고 마주보고 앉는다.

"혹시 최근에 그, 만나는 사람이라도 생겼어?"​

순간 말의 의미를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아? 하는 멍청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타이가큥이 길에서 유키짱이 팔짱 끼고 가는 걸 봤다고 하더라고-."
"언제쯤에?"
"한 4일전쯤인가? 그래서 혹시 생겼나 싶어서 말이지."
"상대가 누군지는 말 안했나?"
"..."

대답 없음. 시선 회피. 다 말했나보네. 그제야 일어나 주전자에 제대로 물을 받는다. 4일 전 같이 데이트를 했는데 그게 들킬 줄은 예상 못했다. 죠지가 저녁까지만 같이 있자고 한 걸 들어주는게 아니었는데 죠지가 부탁하면 들어주게 되버리는 것도 안 좋은 버릇이 된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카게루가 있다는 것을 잊고 유키노조는 생각에 빠졌다. 죠지와 사귄다는 이야기를 진작 할 걸 그랬나. 부모님이 아시면 큰일 나겠지만 에델로즈라면 괜찮지 않을까. 주전자에 올라오는 김을 보고 있으려니 죠지가 생각난다. 죠지도 수증기처럼 가벼운 편이지. 이거, 이상한데에서 죠지를 생각하는 걸 보니 중증이군.​

요새는 이렇다. 굉장히 사소하고 아무것도 아닌데 거기서 죠지를 찾고 있다. 극단 단원들이 트럼프 카드를 하고 있다든가, 길 가다가 지나친 옆 행인의 옷 색깔이 죠지의 머리카락 색깔이라든가. 죠지도 이럴까.

"저어기, 유키짱, 내가 있는 거 잊은거야?"
"아...미안."
"뭐 하나 물어봐도 괜찮나?"
"헤어지라는 말 빼면 얼마든지."
"왜 사귀는거야?"

왜? 어려운 질문이 들어왔다. 연애에 이유가 따로 붙나? 하지만 좋아하는 이유라면 얼마든지 말할 수 있지만.

"귀엽거든."
"뭐가?"
"죠지, 강아지 같아서 귀엽거든."
"그 큰 키로?"
"하는 행동들이 꽤 귀엽거든. 그보다 헤어지라는 말은 안 하네?"
"유키짱이 좋다는데 뭐라고 할 수는 없지."

이제 기숙사에 있어도 죠지하고 전화 통화는 마음껏 할 수 있겠군.​

"우리 입장에서는 유키짱이 더 아깝지만 말이야.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될까나?"
"아직 질문이 남았어?"
"누가 먼저 사귀자고 한거야?"
"죠지."

복도쪽이 우당탕 시끄러운 소리가 울리고 카게루가 뭐가 그리 웃긴지 웃어댄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복도로 나가니 당황한 표정의 유우와 신, 레오, 타이가와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어색하게 웃고 있는 미나토가 보인다. 카게루랑 하는 이야기 다 듣고 있었던건가? 왜?

"그...내기...가..."
"내기?"
"유키짱이랑 그 슈왈츠 녀석 중에서 누가 먼저 고백했는지에 대해서 내기한거야!"

다른 사람 연애가 내기 밖에 안 되는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하는 건지 서운해해야하는 건지 유키노조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휴대폰을 꺼내들어 1번에 저장되어 있는 죠지의 번호를 불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