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구미호 마마x토끼 블마

dpfm 2018. 4. 15. 21:29
새 경호원이 온 날 마스터마인드의 귀가 흥미로움에 쫑긋거렸다. 보통 경호원은 늑대, 여우, 하다못해 고양이나 개가 오는데 그날 마스터마인드 앞에 나타난 것은 토끼였다. 여리여리한 토끼라는 평소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다부진 몸과 얼굴의 흉터가 눈에 보였다.

"난 경호원을 찾았지 토끼를 찾은 적이 없는데?"
"토끼가 경호원을 하지말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사내의 노란 눈과 검은 귀를 보며 마스터마인드는 웃음 지었다.

"여리여리한 토끼가 나를 경호하기에는 일이 벅차거든."
"맡겨보시죠."

그 재수 없다는 백여우로 태어나서 온갖 욕은 다 들었다. 그 재수 없는 백여우가 가문의 가주이자 회사 회장으로 있으니 눈엣가시로 여기고 뒤를 노리는 것들이 어찌나 많더니. 주기적으로 경호원을 바꿔야만 했다. 더구나다 경호원이 뒷돈 받고 뒷통수 치기도 하니 더 골치였다. 결국 거래처 회장인 고양이 수인인 엠프레스의 도움을 빌려야만했다. 엠프레스가 소개해준 경호인이니 믿을만하겠지. 후에 자신을 배신한다면 그녀가 확실히 처리해주겠지.

다시 한 번 남자를 훑어본다. 검은머리에 토끼들 중에서도 드문 노란 눈동자까지. 희귀한 편의 소지물이 생긴 셈쳐도 되겠지. 아홉개의 꼬리를 살랑이며 마스터마인드는 미소 지어보인다.

"이름은?"
"레이븐 크론웰 입니다."
"고용하지."

기뻐하는 기색 없이 묵묵히 목례를 한다. 사내는 제법 마스터마인드의 마음에 들었다. 밤을 며칠이고 새면서 경호를 하고, 비서마저 깜박한 제 스케쥴을 외우고, 말도 안했는데 제 취향의 커피까지 척척 타오니 그로써는 꽤나 마음에 들었다. 결국 그는 비서를 해고하고 레이븐을 비서 겸 경호원으로 세웠다. 따로 소개를 해준 엠프레스에게는 그동안 밀당만 하던 사업 계악서에 싸인을 해주는 것으로 감사를 표했다.

레이븐이 들어온지 3년이 지났다. 문득 궁금해졌다. 토끼가 왜 경호원을 하는지. 물어보려고 했지만 대답은 일과 관계 없으니 대답할 필요도 없습니다, 라는 지극히 무덤덤한 대답이었다. 결국 마스터마인드는 참지 못하고 엠프레스와의 티타임 자리에서 레이븐이 차를 새로 준비하러 자리를 비운 사이 질문을 던졌다.

"토끼가 왜 경호원을 하는거지? 보통 토끼는 사무일 쪽으로 많이 가지 않나?"
"당신이 타인에게 의문이 생기다니 별 일이군요."
"특이한 케이스잖아?"
"대답해주면 이번 계약서에도 싸인해주실건가요?"
"그건 안되겠는데, 여왕님. 대신 전에 가지고 싶다고 한 보석 목걸이를 주지."
"경매장에서 비싸게 샀다고 안 준다니 이렇게 팔아 먹나요?"

엠프레스가 스콘을 집어먹는다. 저걸 만든 게 그녀의 집사인 오베론이었던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따오른다. 스콘을 말끔하게 먹은 그녀가 미소 짓는다. 생각을 정리하는건지, 목걸이와 레이븐의 정보를 저울질하는지 말이 없다. 금방이라도 레이븐이 나타날 것 같은데 그녀는 말이 없다.

"여왕, 싫으면 싫다고-"
"크론웰 가문은 원래 표범 가문이였는데 이번 대의 가주가 자식이 없었는데 친우의 아들이라고 그를 데려와 키웠다고 하더군요. 친어머니쪽은 확실히 토끼지만 아버지 쪽은 신원 불명인데 노란 눈을 보면, 알겠죠?"

오호라, 혼혈이었나? 혼혈은 드물지만 태어나면 겉보기에는 한쪽의 특성이 더 많이 보이기는 하지. 드라마 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친우의 아들이 아니라 밖에 낳은 친자식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혼자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레이븐이 걸어들어온다. 차를 따르고 제 뒤로 가서 자리 잡는다. 그에게 접촉을 시도한 아랫것들이 있겠지. 허나 그는 배신하지 않고 자신을 보좌하고 있다. 여왕의 추천대로 확신한 사람이다. 하지만 왜 배신하지 않는지 궁금해졌다. 슬쩍 물어보면 대답해줄까. 아니면 일과 상관 없다고 또 넘겨버리려나. 마스터마인드의 생각을 아는지 엠프레스가 입을 열었다.

"그 집안 망했어요. 그 집 아들이 고용주의 정보를 팔아넘겼다는 소문이 있었거든요. 소문은 소문이고 게다가그 집 아들의 동료가 누명을 씌운거라는 소문도 있지만요."

등 뒤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헙이라고 할까, 히익, 라고 할 소리가 한 번 들리고 고개를 돌렸을 때 충실한 경호원은 무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무것도 듣지 않은 사람처럼 평송와도 같은 얼굴이다.배신 당했기 때문에 더 이상 배신하지 않는건지도 모른다. 우직한걸까.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차를 마신다. 차 맛이 좋다. 문득 그가 어디까지 자신을 따를지 궁금해진다.

마스터마인드가 제일 첫번째로 한 일은 그에게 중요한 서류라고 속인 서류 봉투를 가지고 있게 하고 사람을 써서 서류를 매수하는 촌극을 벌여보았다. 결과는 예상대로 서류를 묵묵히 지켜냈다. 그 다음 한 일은 그에게 밤을 새라는 명령이었다. 교대 인원도 없이 밤을 새며 자신의 침실을 지키게 했고, 낮에도 자신을 지키고 쉬는 시간 없이 경호를 서게했다. 눈밑에 다크써클이 진하게 지고도 그는 묵묵히 제 일을 하며 틈틈히 자는 선잠으로 버텼다

"오늘 업무는 이걸로 종료. 자택으로 돌아간다."
"네."

다크써클이 짙게 내려 앉는 눈을 깜박이며 대답하고 뒤따라온다. 등 뒤를 따라오던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뒤를 돌아보자 복도 벽에 기대서 눈이 반쯤 감긴 레이븐이 보인다. 이름을 불러보지만 대답이 없다. 결국 몸의 한계인가. 사람을 불러 그를 자택까지 옮겼다. 밤 새는 일은 이제 그만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이번만큼은 특별히 제 방에 눕혀 간호를 해주기로 했다. 그의 머리맡에 앉아 무릎베개를 해주고 아홉개의 꼬리로 그를 감쌌다. 살짝 떨리는 입술이 낮게 누군가의 이름을 속삭인다. 여자 이름 같은 그 이름을 몇 번이고 부르며 꼬리 속으로 어린아이처럼 파고든다.

"이 몸의 꼬리를 만지다니 영광인 줄 알아."

호기심, 흥미로움, 어디까지 버틸까의 궁금증. 혹은 그 이상의 감정. 하얀 구미호는 웃으며 제 호위의 머리를 쓰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