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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나블마(?)

dpfm 2017. 12. 10. 19:49
날씨가 좋아, 그리 말하는 순간 바람이 불었다. 들판의 꽃잎들이 사방에 휘날린다. 바람에 휘날리던 꽃에서 시선을 뗀 엘소드는 여전히 말없이 이젠 붉은색이 되버린 자기장을 휘감고 있는 레이븐을 보았다. 당신처럼 되고 싶었다. 당신의 망토처럼 새하얀, 당신의 검처럼 날카로운 기사가 되고 싶었다. 당신은 내 우상이었다. 당신은 내 스승이었고, 내 목표고...

"형, 한발짝이라도 더 다가오면 좋지 않은 시간을 보내게 될거야."

대답 대신 한발짝 다가온다. 바람이 멈춘다. 모든게 멈춘 것만 찰나 검이 엘소드의 갑옷을 부수고 살을 비집고 들어온다. 각오는 했지만 망설임 없는 행동이 아프다. 엘소드는 부활석을 꽉 쥐었다. 심장만 뛴다면 어떤 상처든 회복 시켜준다는 연금술사들의 보석. 물론 부작용도 나중에 어마어마하게 따라오겠지. 그래도 난 지금 그를 막아야해. 몸을 일으키는 자신을 보고 무표정한 얼굴에 금이 간다. 하지만 곧 검이 다시 들어온다. 평화롭던 들판이 피로 얼룩진다. 아파. 아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선다. 몇 십번이고 그것이 반복될 쯤 검이 멈추었다. 이야기 할 생각이 들었어? 물음에 고개를 아주 살짝 까닥인것이 긍정인지 그냥 생각에 빠진 것지 알 수가 없다. 이야기 하자, 다시 말을 꺼내자 검의 끝이 아주 살짝 땅으로 향한다. 다시 바람이 분다. 꽃잎들이 피냄새를 지우려는 듯이 부산히 움직인다.

"동료를 지키겠다는 녀석이 적을 상대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다니. 로드 나이트라는 이름이 울겠구나."
"형도 내 동료야."
"아니, 여기 있는 건 고장난 원념 덩어리다. 그리고 난 아주 침착하게 미쳐있지."

다시 검이 날라든다. 이번에는 막았다. 검이 허공에서 노래한다.

"기사는, 왕국을 위해서, 왕국에 봉사하는 자다! 왕국의 적을 베어라!"

단호하고 이성적인 그 목소리는 여전히 내가 따르고 존경하던 이의 목소리인데 왜 이렇게 된 걸까. 붉은 자기장이 따갑다. 시야가 흐려지는 것이 땀 탓이 아니겠지. 내가 형을 좀 더 이해했다면 좋았을 걸. 더 많이 이야기 해볼 걸. 오웬이 처음 봤을 때 떨리던 그 몸을 그냥 넘어가지 말 걸. 그랬다면, 이 마음을 고백했더라면...

"돌아와줘."
"넌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 하는구나. 어디 한 번 나를 죽여보거라."

이젠 너무 늦었을까.

"벨더의 귀족들을 죽인 건 나다. 그리고 이제 남은 인간들도 지울거다. 네가 날 설득하고 막아선다고 해서 내가 포기할 거 같으냐? 적과 계속 싸우다가 죽는다. 그것이 기사 아니던가?"

나는 당신을 되돌리고 싶어. 그게 안 된다면 막고 싶어. 그게 나의 의지야.

"긍지를 걸고!!!"

검이 들판을 찢는다. 공기가 운다. 당신의 검이 부러지고 당신의 가슴에 검이 닿는다.

"내가 형보다 강해졌지?"

얼굴에 아주 작게 미소가 지어진다. 그 미소가 이전과 너무 똑같아서 힘이 빠졌다. 심장을 향했던 검의 진로가 휘어진다.

그리고 아픔.

아래를 내려본다. 자신의 검은 그의 허벅지를 뚫었고 제 가슴에는 자기장에 휩쌓인 코어가 박혀 있었다.

"내가 더 강한 거 같구나."

부활...이...부활...안돼, 부활이. 맞다. 자꾸 쓰면 부활하는데 시간이 걸리게...된...된...다고...

"자, 다음을 기약하자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