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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 유키노조랑 인간 죠지...3

dpfm 2018. 6. 13. 21:23
-같이 산에 가자. 같이 살자. 오늘밤에 떠나자. 허락 받고 올게.


그 약속을 믿고 기다려겠지. 그런데 돌아온 것은 사람을 홀렸다는 누명과 봉인이었다. 기다리던 사람은 오지 않았다. 얼마나 사람들이 미웠을까. 얼마나 불안했을까. 자신이 사랑한 사람이 자신을 배신 했을지도 모른다는 그 생각에 잡아먹혀가며 오랜 시간 괴로워했겠지. 목을 조르는 손길과 휘몰아치는 생각에 허우적거리면서 손을 뻗는다. 부드러운 붉은 머리카락이 잡힌다. 사람으로 변신해도 옷자락 아래도 꼬리가 보이거나 귀가 튀어나는 둥 엉뚱한 면이 있었지. 긴 붉은 머리카락처럼 동물로 변했면 털도 꽤 길었지. 착했다. 한없이, 착하고 착한 연인.


손에서 머리카락이 빠져나간다. 산소가 부족한 폐가 비명을 지른다. 사과해야할테데, 사과를, 해야, 겨우 뜬 눈이 마주친다. 울고 있는건지 화내는 건지 모르겠네. 시야가 깜깜해진다. 눈을 감는다. 소리도, 괴로움도 모두 사라진다.


"죠지."


흐느끼는 소리에 다시 눈을 뜬다. 기절한 걸까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 있는 히로와 코우지가 다락방 출구와 가까운 곳에 있고 유키노조가 누워있는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목이 아프다.


"이제 안 떠날거야?"

"죠지, 대답하지말고 이리와요, 네?"


하지만 계속 기다려왔을테데 여기서 도망칠 수는 없다.


"물론. 죠지 힘낼테니 이제 그만 울어."


환하게 웃는 얼굴 보며 역시 문을 열기 잘 했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그 해, 겨울 죠지는 학교를 그만두었다. 유키노죠가 가끔 죠지의 목을 졸랐기 때문이었다. 유키노조가 보이지 않는 다른 사람들 눈에는 아파보였으니까. 물론 병원에 가도 딱히 아픈 곳은 발견되지 않았고 죠지는 부모를 설득해서 할머니댁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히로가 있는 신사에서 한동안 머물며 지낼 계획을 세웠다.


"오랜 시간 갇혀 있던 탓에 감정이 부정적으로 변질되려고 하고 있었어요. 그런 상태로 풀려나서..."

"내 목을 조른다고?"

"천천히 정화 시키려고 했는데 풀어준 것도 모자라서 맹약까지 해버렸잖아."

"뭘 해?"

"약속. 힘을 가진 자가 하는 약속은 영혼을 건 맹약이 된다고! 서로 안 떠난다고 했으니 이제 네가 죽어서 다시 태어나도 유키노죠는 너를 찾아내서 붙어있을 걸."


그건 크게 와닿지 않지만 죽고나서 찾는게 늦어져서 또 혼자 남겨지지 않을까 그게 걱정이 된다. 게다가 환생한 자신이 유키노조를 싫어하면 어떻게 될지 그게 더 큰 걱정이다. 그럴 일이 없으면 좋겠다.


"한 잔 하겠어?"


히로와 대화를 나누는 죠지를 보던 유키노조는 코우지가 내민 잔을 받았다.


"사람은 우리보다 일찍 죽지. 살면서 변심할지도 모르고, 환생하고 널 싫어할수도 있지."

"그 정도도 모르는 바보는 아냐."


술맛이 꽤 좋다. 기분이 좋아져 싱긋 미소가 나온다.


"죠지에게 내 여우 구슬의 반을 줄거야. 적어도 보통 사람처럼 늙어 죽지 않겠지. 그리고 변심한다고 해도 무관심이 아니라면 뭐든지 괜찮아."

"너 상당히..."

"제정신이 아니라고? 근데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죠지가 죽던지 말던지 너의 그 히로가 자유로워지길 바라며 죠지가 다락방 문을 열게 내 이야기를 했잖아?"


여우와 뱀은 서로 마주 보고 잔을 부딪친다.


"인간에게 홀린 불쌍한 동지들끼리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