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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와 인간이라는 느낌으로 유키죠지유키

dpfm 2018. 6. 9. 19:42
-십육야의 밤의 꿈길에서 만나요.
각오를 했다면 지나가세요.
이제 현세로는 돌려보내지 않아요.
찰나의 사랑을 노래한다고 해도...
노랫소리와 함께 눈이 떠졌다. 할머니 댁 천장. 그래, 정신을 잃었지. 멍하니 천장을 보며 기억을 더듬어 간다. 휴대폰을 확인하니 부모님에게 문자가 몇 통 와 있어서 거기에 답장을 하고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대충 먹을것을 찾아서 먹고 다락방을 한 번 더 확인한다. 부적이 새 부적이다. 적어도 어제 일이 꿈은 아니라는 거군. 신사에서 왔다고 했으니까 신사에 가볼까.
신사로 가는 길은 기억하고 있다. 논밭을 가로질러 산길을 걸어 올라가면 있는 신사를 떠올렸다. 그러보니 그 신사에서 모시던게 뱀이었던가. 기억났다. 옛날에 들은 이야기. 옛날에 이 마을에 사람을 홀리던 여우가 살았는데 그 여우와 뱀이 싸워서 뱀이 이겼고 그 뒤에 뱀을 모시기 위해서 신사가 생겼다고 했지.
"안녕."
신사 입구에 들어서자 어제 그 공중에 붕 뜬 그가 죠지에게 인사해왔다.
"히로는 지금 자리 비웠어. 신사에 사는 사람은 히로랑 나뿐이라 지금은 아무도 없는 셈이지."
"귀신?"
"나름 오래 묵은 편이지. 어제 갑자기 쓰러졌는데 괜찮아?"
"이런 걸 보는게 처음이라서 놀랐는데...사실 아직도 내가 제 정신인지 의심 중이야."
"한 번도 나 같은 걸 본 적 없었어?"
도리도리, 고개를 내젓는다. 흐음,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공중에 이리저리 떠다닌다. 신사에 유령이 있어도 되나? 하는 사소한 의문이 생각이 나지만 굳이 입밖으로 내지 않는다. 공중에 떠 있던 그가 자리에서 내려와 죠지와 눈높이를 맞췄다.
"나는 미하마 코우지."
"타카다노바바 죠지."
"너 그 다락방에 가지 말라는 이야기 듣지 못했니?"
"듣기 들었지만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으음,  원래는 못 보는 체질인데 다락방에서 나오는 기 때문에 보이게 된 건가?"
"다락방에 누가 있는지는 말해 줄 수 있잖아?"
"여우가 있지."
"마을 전설에 나오는?"
"여우. 빨갛고, 빨간 털을 가진 여우."
"니네집이 거기 지어지기 전부터 그 땅에 있었어. 집이 지어지고 나서 다락방으로 옮겨진거지. 너희 할머니는 아마 전설 속에 여우가 사람을 홀린다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믿으셔서 못 가게 한 걸거야."
그럼, 지금 제 눈앞에 있는 건 뱀일지도 모르는 일이네. 정말 여우에게 홀린걸까. 죠지는 아직도 헷갈리는 머릿속을 정리하려 고개를 흔들며 신사로 걸어갔다. 여우는 위험하고 말 그대로 돌아갈수도 있지. 다락방 문 같은 거 그냥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모르는 척 하면서 지내면 되겠지.
"근데 그 여우는 뭐한다고 사람을 홀렸데...사람이 되고 싶었나?"
"홀린 적 없어."
"어?"
"홀린 적 없다고. 여우는 그냥 인간이랑 사랑에 빠졌을 뿐이였는데 마을 사람들이 오해한거였어. 여우니까 홀렸을거라고 오해한거지."
"...그럼, 뱀은 뭐야?"
"나는 사람들이 도와달라고 해서 도와준건데 끝나고 나서야 오해인 걸 알았지."
진짜 뱀이었어? 죠지가 돌아보자 그가 공중에 뜬 체 조금은 서글프게 웃고 있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머리가 복잡하다.  신사의 마루에 누워버리고 싶은 걸 참고 고개를 돌렸다. 그 다락방에서 여우는 얼마나, 그 전부터 얼마나 오랫동안 갇혀 있었던걸까.
"풀어주면 되잖아?"
"그게 어려워. 자물쇠에는 맞는 열쇠가 있는 것처럼 여우를 가둔 주술을 풀려면 나름의 조건이 있는 모양인데 전해지지가 않았어. 게다가 너무 오래 갇혀 있어서 여우가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장담도 못하겠고 말이야. 히로가 가끔 가서 대화는 하는데 어제는 네가 있어서 대답을 못해줬거든."
노래를 작게 흥얼거려본다. 이 노래를 얼마나 많이 불렀을까. 침이 마르도록, 목이 쉬도록 불렀을까.  빨간 털이라. 사람으로 둔갑하면 붉은 머리카락을 가지게 되는걸까. 얼마나 많이 기다렸을까.
"시간이 많이 흐르면서 그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사람도, 나를 볼 수 있는 사람도, 그날 여우가 아무도 홀리지 않았다는 걸 아는 사람도 이제 없어. 히로랑 나 단 둘 뿐이지. 히로는 몇 백년만에 태어난 나를 볼 수 있는 아이니까 소중해. 그러니까 히로가 그 다락방에서 손을 떼면 좋겠어. 그냥 신사고, 나도 내버려두고 멀리 갔으면 좋겠어. 그래서 네가 갖줬으면 하기도 해."
거참, 이기적인 뱀일세. 대답 없이 죠지는 몸을 일으켰다. 한 번만 더 가보자. 다락방 문을 열어보자. 안 열리겠지만 그래도 열어보자. 그 충동이 이제는 자신을 잡아 이끄는 것만 같다.  집까지는 금방 도착한다. 눈 깜짝할 사이, 같은 감각으로 집 현관에 도착해 문을 연다.
-처마 밑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말의 힘을 믿으며 속삭였어.
시간이 멈추면 좋을테데.
아아, 젖은 발가락의 끝까지
품위있게 곱도록
향을 품어
노랫소리가 들린다. 이 노래 지금 들으니 이상하게 그리운 느낌이 든다.  다락방 앞에 선다. 그냥 이야기를 들었을 뿐인데 왜 이리 감정이 이입 되는건지, 안 쓰러운건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다락방 문 손잡이를 붙잡는다. 기다렸다는 듯이 입 밖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다녀왔어, 타치바나."